인류가 희망하는 식사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종의 기술과 방법, 그리고 과학적 지식이 요구된다. 인류는 생존을 해오면서 다양한 노력을 하였다. 이를 종합해보면 다음의 네 가지로 요약이 되며, 마지막으로 다섯번째의 노력이라고 한다면 이는 과학적인 혁명이 이루어지고 난 이후의 사건이라고 본다. 우선 토양의 관리이다. 토양을 비옥하게 하기 위해서 인류가 하였던 노력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그중의 하나는 윤작법이었다. 같은 작물을 한 토양에 계속해서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작물을 돌려가면서 심는 방법을 썼다. 두 번째는 일본의 도쿠가와 시대에 정어리를 썩혀서 땅의 비료로 썼던 기록이 소개되었다. 동물의 분뇨와 심지어는 인간의 분뇨까지도 땅을 비옥하게 만들기 위해서 이용하였었다. 동물이나 인간의 분뇨를 농업에 사용하는 데는 생활환경에 미치는 여러 가지의 위생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에 정어리 말린 가루를 비료로 써서 작물을 생산하여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고 일본의 경제 부흥에 큰 역할을 하였다. 두 번째로 병충해 방지를 위한 노력이다. 인류가 경험한 경험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결과를 초래해서 많은 희생자를 낸 사건은 아마도 감자 농사의 실패로 기근이 왔던 것이라고 본다. 기록에 의하면 아일랜드에 감자가 들어오기는 1580년경이며 이후 3300년 가까이 감자는 아일랜드를 위시해서 일부 여러분인 의 주 열량 원이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에 1845년에 겪은 감자 흉작으로 많은 인구가 희생되었다. 이제까지 경험하지 않았던 병충해로 감자는 모두 시들고 썩어서 씨감자도 건지지 못한 것이었다. 아마도 이 경험 이후에 살충제의 개발 필요성이 인지되었을 것으로 본다. 또한 환경의 변화가 감자의 병충을 확산시킨 하나의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세 번째로 인류는 생산된 농산물의 유통이 문제가 되었다. 이를 원만히 하기 위해서 도로의 포장, 건넬 공사, 또한 교통의 수단을 마련하였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토목 기술의 발전과 교통수단 해결을 위한 기계 기술의 발전이 필수 기술이라는 점을 인류는 경험을 통해서 인지하였다. 넷째로 생산된 농산물의 보전 방법이다. 농업혁명 이후 초기에는 생산된 식품을 건조 방법, 염 저장 방법과, 발효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에 냉장법과 캔인 기술이 발달하면서 식품의 보존과 분산이 용이해졌다. 인류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로 들어서면서 세계인구의 급증은 식품의 절대 부족으로 인한 영양 불량과 실조의 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그래서 산업체 노동자들의 영양 관리를 위한 요구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영양결핍과 실조의 생리적인 주원인을 규명해야 했으며, 식품의 증산을 위해서 이를 가로막는 원인을 제거하는 방법과 지식을 얻어야 했다. 서구사회에서는 주요 식품으로 등장한 우유의 저장 문제가 대두되었다. 우유를 가열하여 끓이면 유청이 생기고 식혀서 오래 놓아두면 앙금이 가라앉는다. 이렇게 가열하는 방법을 이용한 우유의 저장성에 대해서 19세기 중반의 유럽인들은 의심을 하였다. 그리고 우유의 품질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우유를 농축시켰을 때 많은 사람이 품질에 대해서 납득하였다. 그래서 영국에서 최초로 농축시킨 우유제품에 대해서 특허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 1850년 미국의 게일 보어 던 스가 개선된 방법으로 시장에 내놓았을 때 많은 사람이 이 제품에 대해서 인상적이라고 하였다. 살균 방법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고서는 설탕을 첨가하지 않은 우유 그 자체로는 캔 님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보어 던 스가 제시한 방법은 농축유에 설탕을 가하고서 캔 님을 하면 우유가 상하지 않고 오래 보전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당 농축유는 미국의 남북 전쟁 당시에 군인의 레이 숀으로 상당한 환영을 받았고 후에 민간인에게까지 보급되었다. 이후에 가격이 저렴한 제품으로 탈지 농축유가 보급되었다. 이 제품에는 지방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비타민 A가 결핍되어 있다. 그런데 공장 노동자가 밀집해서 사는 빈민가에서는 값이 싼 탈지 농축유를 유에서게 먹였기 때문에 이 당시 어린이 구루병이 이런 지역에서 유발하였다. 한편, 백색의 밀가루로 만든 흰 빵이 영양가가 낮다고 평가되었다. 1840년대에 헝가리에 철로 만든 롤러가 소개되었는데 이 철제 롤러로 밀을 도정하면 전분만 빠지고 밀의 배아는 걸러서 분리가 되었다. 그러므로 밀가루의 상태는 보다 희면서 저장기간도 보다 길어졌다. 그러나 재래식으로 써왔던 석제 롤러로 밀을 도정하면 배아가 터지면서 배아유가 섞인 밀가루가 만들어진다. 이 밀가루는 색깔도 누렇고 저장기간도 짧아진다. 그러나 그 당시의 상인이나 소비자는 보다 흰색의 밀가루를 선호하였기 때문에 1870년경에 도기 롤러를 생산하여 밀가루 도정에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 내었다. 그러나 분리해서 버린 밀의 배아 속에 인간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가 함유되었다. 아시아에서도 쌀 도정 과정에서 유사한 경험을 하였다. 그러나 유럽사람들이 흰 빵에 유혹당하듯이 백미에 대해는 그 정도로 선호의 경향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역시 아시아에서도 쌀 도정 과정에서 유사한 경험을 하였다. 그러나 유럽사람들이 흰 빵에 유혹당하듯이 백미에 대해는 그 정도로 선호의 경향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역시 아시아에서도 백미에 대한 선호의 경향은 높았다. 19세기 말에 쌀의 도정이 정미 기계로 이루어졌고 역시 도정 과정에서 쌀의 배아는 떨어져서 쌀겨와 함께 버렸다. 이 배아는 영양소를 다분히 함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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