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는 14세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기간으로, 이 기간은 서구 사회에서 급격한 인구 증가로 모든 부분의 산업이 현대체제를 갖추는 밑받침을 마련한 시기이며 산업혁명과 과학혁명을 통해 생활의 변화가 획기적으로 일어난 사회였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조선시대는 빈곤으로 인해 서민층의 생활이 매우 어려웠고 16세기 말에 7년간에 걸친 임진, 정유재란과 17세기 초엽의 정묘, 병자호란으로 인해 막대한 인명과 재산상의 피해를 보게 되었다.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황폐한 농토와 주기적으로 닥치는 유행병과 흉년은 17세기와 18세기를 거치는 동안 전쟁에 못지않은 인명을 앗아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임진왜란 이전부터 문란해 있던 토지 소유로 인해 사회적 불안정과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더욱 심해지게 되었다. 그런데도 조선시대는 우리나라 식생활 문화의 과학성이 높아지고 그 문화 규범이 정비되어 현대의 한식이 완성되는 시기로 농서와 지리지의 간행, 동판 인쇄술의 발전, 도량형의 고정, 의약학의 연구 등과 같은 과학적인 정책이 추진되었다. 새로운 식품으로는 고추, 호박, 고구마, 감자, 땅콩, 완두, 토마토 등 남방 식품을 도입하여 재배에 성공하였고, 각 지방의 산출 식품이 파악되었으며 일상 식사에서 식품 구성의 원칙이 성립되고 식기와 용구의 용량 기준, 약재를 이용한 양생 음식의 개발 등 식생활이 향상되었다. 온돌의 보급으로 식사 양식이 좌식으로 일원화되었고 본청 백자의 개발과 사기소의 확충, 놋그릇의 제조 보급으로 식기와 용구의 기준이 마련되었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는 임진왜란을 기준으로 조선 전기와 후기로 구분하며, 여기서도 조선 전 식생활을 나누어 보았다. 14세기 말부터 17세기 이전까지의 조선 전기에는 고려시대로부터 다듬어진 한식의 전통이 조리 방법, 맛, 식사 예절에 이르는 식생활의 전 영역에서 서서히 정립되어 가고 있었다. 이 시기에 재배된 곡류는 금양잡록의 기록을 통해서 살펴보면, 벼의 품종이 27종, 수수 4종, 조 16종, 피 5종, 보리 4종, 밀 2종, 콩 7종, 깨 3종 등과 동부, 광장도, 완두, 메밀 등이 있었다. 채소의 종류는 '수운잡방', '도문대작', '음식디미방' 등에 기록되어 있는데 특히, '증보산림경제' 6권에는 '여러 가지 봄나물은 독이 없으니 먹어도 좋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산과 들의 여러 가지 산나물을 식용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1530년에 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각 지방의 토산 어패류의 품목을 보면 생선류가 51종, 조개류 16종, 해조류 12종, 기타 수산 동물 15종 등으로 다양한 어패류를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육류로 소는 농사를 짓기 위해 필요한 가축이었으므로 함부로 식용하기가 어려웠고, 돼지, 염소, 닭, 오리, 거위 등이 식용에 쓰였고 그 외에 노루, 사슴, 산돼지 등의 야생 짐승도 식용으로 이용되었다. 선조 대왕은 소의 젖인 우유를 드셨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궁중과 상류층에서 우유를 섭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말고기는 포로 말려서 먹었으며,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개고기도 유행해서 여름철에 보양식으로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먹기 시작한 것으로 명태가 있는데 원래 명태는 조선 개국 250년경에 태모라는 사람이 병천 지방에서 명태를 처음으로 잡았는데, 이름을 몰라서 지명의 '명' 자와 이름의 '태' 자를 따서 명태라고 지었고 명태가 마른 것을 북어라고 했다는 전설이 있다. 17세기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 후기 사회는 인구가 증가하고 농업생산력이 향상되며 상공업이 발전하고 시장이 발달하는 등 사회경제구조의 변화로 양반, 중인, 상민, 천인으로 구성된 신분 구조에도 변동이 일어나서 양반 인구가 급증하고, 증인이 점차 증가하며 상민과 노비가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가 또한 인구의 도시 유입이 증가하였으며 고종 31년에 갑오개혁이 실시되면서 신분제도가 폐지되어 제도상으로 노비제가 폐지되었다. 이러한 조선 후기의 사회변화는 중세봉건 사회가 해체된 것으로 보며 조선 후기는 한국 중세사회의 마지막 단계라고 본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변동은 식생활에도 영향을 미쳐서 임진왜란 이후 평민들의 자아의식이 싹틈에 따라 식생활 측면에서 양반과 서민 간의 계층 구분이 완화되면서 식생활의 계층 간의 평준화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궁중식, 양반식, 서민식의 구분이 뚜렷해서 사회계층에 따라 식사 내용에 큰 차이가 있었으나 임진란 이후 양반과 서민의 식생활의 관습이 하나로 통일되면서 현재와 같은 한식의 형태가 완성되었다. 또한 현재와 같이 다양하고 화려한 식사의 내용으로 상차림이 완성된 것도 조선 후기라고 할 수 있다. 즉, 주식, 찬물, 장과 초, 반과 류 와 주류, 음청류 같은 기호품의 조리, 가공 기술이 크게 발전되었으며 동식물성 식품이 한층 조화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 시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17세기에 전래한 고추가 18세기에 와서 고춧가루로 가공되어 김치를 비롯한 각종 음식의 조리에 본격적으로 사용됨으로써 우리나라 식생활에 큰 변혁을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생고추와 고춧가루는 같은 식품으로 보이지만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말려서 빻는다는 가공과정을 거침으로써 연중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저장성과 고추장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조미료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이전 시대까지의 김치는 주로 소금, 후추, 천초, 생강 등의 양념을 이용하여 담그던 것이 고춧가루를 사용함으로써 맵고 얼큰한 맛으로 변화되면서 우리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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